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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세계사를 바꾼 6가지 음료 - 메소포타미아 맥주부터 21세기 콜라까지

서론 - 안전한 갈증 해결법?

경제지 '이코노미스트'의 에디터인 톰 스텐디지(Tom Standage)가 쓴 이 책은 서론에 여러 가지 음료가 등장한 배경은, 오염되어 질병의 원인이 되는 물에 대한 대안으로 나오는 경우가 가장 컸다고 저술합니다. 또한 소개한 음료는 공통적으로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에서, 각 시대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책은 각각 음료의 역사적 배경을 풀어 설명하고,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었으며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자세히 알려주는 점에 눈길을 끌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이 책에서 설명하는 6가지 음료입니다. 맥주, 와인, 증류주(위스키, 럼주 등), 커피, 차, 코카콜라입니다.

다만.. 결론을 먼저 얘기한다면, 이 책은 자세하게 쓴 백과사전 같은 느낌이었습니다.(중간에 좀 지루했고, 읽기 힘들었어요) 아래에 있는 내용은 각각의 음료에 대한 극히 일부의 설명이며, 음료의 아주 자세한 유래가 궁금하다면 이 책에서 해당 음료 페이지를 찾아 천천히 읽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우선 책에 나오는 음료의 역사를 간단히 소개하고 감상평을 저술할께요.

 

 

석기 시대 ~ 고대 이집트 - 맥주

왼쪽 - 고대 이집트 맥주 벽화(곡물이 많이 떠다녔으므로 빨대로 마셨다), 오른쪽 - 현대적 해석(?)

기원 전 1만년경에 인류가 처음으로 정착하기 시작할 때는 곡물의 중요성이 서서히 높아진 때였습니다. 농경 이전에 야생 채집으로 곡물을 먹을 당시에, 물에 담그고 방치하는 과정에서 당분을 섭취하고 기분 좋게 취하는 것을 알게 된게 인류의 첫 맥주 양조 및 음용 경험으로 저술합니다. 이후 여러 시행착오를 반복한 끝에 풍부한 맥아와 높은 도수의 알코올을 함유한 맥주를 만들어냈고, 고대인들은 이를 '천국', '기쁨을 주는 자' 등 마치 현대의 광고에서 나올 단어로 묘사했습니다. 특히나 고대인들은 맥주를 마시면 취하는 현상을 불가사의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다양한 종교적 의식에서 이를 사용했습니다. 또한 건강상의 사유로 맥주는 허브나 각종 약초를 섞어서 먹음으로서 진정제 효과를 하는 의약품으로도 활용하는 등 고대인들은 맥주를 '신비한 음료'로 여기는 성향이 강했습니다.

최초의 맥주에 대한 기록은 '쓰는 행위'가 처음 남겨진 기원전 3000년경의 메소포타미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수메르인의 급여 명세 및 세금 징수, 배급 상황 등에 관한 기록에 맥주를 상징하는 그림 문자는 흔하게 등장했으며, 경제적인 부분에 있어서 맥주가 고대부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에 대한 사료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집트 고대 시기에는 노동의 대가로 빵과 맥주를 배급하였고, 행운과 건강을 의미하는 인사말로 "빵과 맥주"라고 얘기를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렇듯 맥주는 고대의 사람들의 삶 곳곳에 들어간 중요한 음료로 작용했습니다.

 

그리스∙로마 시대 - 와인

아시리아의 왕 아슈르나시르팔 2세가 와인을 마시는 모습

이후 기원전 870년경 아시리아라는 나라는 새로운 수도의 완성을 기념하기 위해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축제를 벌입니다. 10여일 동안 지속된 연회에 7만여 명 되는 사람들이 참석하였고, 소, 양, 오리, 거위 등 수많은 가축을 축제의 음식으로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점은 왕이 선택한 음료가 당시의 대표적인 음료인 맥주가 아닌, 산악지대에서 힘들게 구해와야 하는 와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와인의 기원도 맥주와 같이, 정확히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기원전 6000년경에 와인을 만들고 제공하는 도기를 발명했다는 사실을 통해, 아주 오래 전부터 포도를 으깨서 저장했더니 와인을 얻을 수 있었다는 우연한 사실이 시초라고 추측할 뿐입니다. 이러한 와인 제조 기술은 그리스와 아나톨리아(현대엔 터키) 지역으로 전파하면서 와인 생산이 증가합니다. 특히 지중해 동부 연안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와인은 처음엔 엘리트 그룹만 마실 수 있는 사회적 신분의 표시로도 사용했고, 이후 바다를 통한 교역량의 증가와 생산량의 증가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대중적인 음료로 발전했습니다. 

또한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이 주변의 페르시아 등의 국가들과는 다른 문명화된 사회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였고, 주연(酒宴)을 의미하는 심포지엄에서 논쟁적인 토론을 즐길 시 항상 와인을 마시며 본인들의 문화를 향유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와인이 대중화되면서 귀족들은 와인을 마시는 여부보다 어떤 곳에서 생산하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이것이 지금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빈티지(Vintage)의 시초가 됩니다.

 

고대 로마인들의 와인 밟기~

와인이 고대 사회에서 중요했던 또다른 특징 중 하나는, '안전한 음료'라는 점입니다. 물과 달리 와인은 발효 과정에서 병원균이 없어지며 천연 향균 물질을 포함했기 때문에, 건강한 음용수를 마실 수 있는 주요 수단이었습니다. 또한 그리스에서는 와인을 물에 섞어먹는 습관을 문명화된 것이라 생각하며 취하는 것을 야만인으로 경계하기도 했으며, 맥주처럼 약품으로서도 사용하였습니다.

이처럼 와인은 고대의 문화와 중요한 음료, 약품 등의 다양한 용도에 사용했습니다. 현대의 정치적인 주요 행사에서 와인을 마시고, 서양인들이 아플 때 와인과 과일을 넣어 데워 마시는 뱅쇼 등은 모두 이러한 역사적 배경해서 기인했을 것입니다.

 

중세 유럽 - 증류주

스페인 안탈루시아 코르도바 전경

처음 증류주는 당시의 '최첨단 과학 기술'을 보유한 아랍 지역에서 처음 나왔습니다. 10세기 말 문화의 중심지는 현재 스페인 지역인 안다루시아의 수도 코르도바였으며, 숫자의 진법, 천문 기구, 항해 기술 등 다양한 과학 기술이 발전했습니다. 그 중 유명한 것은 다양한 여러 음료를 새로운 방식으로 제조할 수 있는 증류법이었고, 단어 '알코올'역시 증류법 과정에서 고도로 정제된 어떤 물질을 상징하는 과정에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아랍의 학자들은 금욕적이었기 때문에 치료제 등으로 사용했고, 본격적으로 즐거움을 위해(?) 증류주를 소비하는 것으로 변모한 때는 15세기에 와서 대중화되었습니다. 인쇄술의 발달로 증류주 제조법 정보 공유가 쉬워지면서 유럽의 여러 지방에서 다양한 원료를 이용해 증류주를 제조하고, 여기서 Brandy(브랜디)라는 단어가 탄생합니다. 또한 마침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탐험하는 등의 대항해시대에 맞춰 캐러비안 섬들과 지금의 브라질에 해당하는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수입해와 설탕을 대량으로 재배했고, 이 과정에서 노예 운반을 하는 담당자 및 노예상인들과의 거래 수단으로 브랜디를 사용하면서 증류주가 점차 보편화됩니다.

 

당시 노예 운반선의 단면도, 이들에게 노예는 가축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이후 설탕 농장주들은 설탕 생산 과정의 부산물인 당밀을 이용해 럼주를 만들었고, 수병들이나 노예들에게 고된 일들을 할 때마다 럼주를 지급하면서 일종의 '윤활유(?)'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처럼 식민 사회의 발달로 증류주의 수요와 공급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역설적으로 이는 과거 노예무역의 잔혹함을 상징하는 음료로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에서는 이후에 미국 건국에 증류주가 얼마나 관여했는지에 관한 내용도 있었습니다. 럼주가 유행할 17세기 무렵 대량의 당밀을 수입해 미국에서 럼주를 만드는 방식이 열풍이었는데, 영국에서는 당밀법을 제정해 이에 세금을 부과하게 했습니다. 이후 '자유의 아들들'이라는 단체가 이를 반대했고, 보스턴 차 사건등과 맞물려 영국과의 전쟁 끝에 독립을 합니다. 이후 미국에서는 옥수수를 이용한 버번 위스키도 만들어지는 등 다양한 변화도 겪었습니다.

이처럼 증류주는 중세와 식민지 시대, 신대륙 발견 및 건국 시기를 대표하는 여러 역사가 맞물린 술이었습니다.

 

근대 유럽 - 각성의 커피

17세기까지도 유럽에서는 아침 식사에도 오염되기 쉬운 물 대신, 맥주나 와인을 통해 수분을 섭취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커피가 소개되면서 아침에 몽롱하지 않고 깨어있는 상태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점에 많은 환영을 받았으며, 커피는 현대적인 상징을 받았습니다.

 

아랍 여인이 가면을 쓰고 커피를 볶는 모습. 아랍의 커피 문화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커피가 최초로 대중화된 지역은 15세기 중동의 예멘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당시 이슬람들은 밤에 진행하는 여러 종교의식 때 잠을 물리치키 위해 커피를 마셨고, 이후에는 커피를 마시는 모임인 커피하우스가 유행하면서 주요한 만남의 장소와 정보의 근거지 역할을 합니다. 이후 서유럽으로 커피하우스와 커피 문화가 급속하게 퍼지고, 비즈니스 모임, 정치인, 청교도, 자본가들의 집결지 등 당시 지식의 주요 발상지로 손꼽힙니다. 커피하우스가 늘어나고 여러 사람들이 모이면서, 문학가, 경제인, 음악인들이 주로 모이는 커피하우스 등 여러 유명세도 얻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아라비아에서만 생산되던 커피를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식민지에 재배하기 시작해, 생산량도 대폭 증가했습니다.

 

17세기 커피하우스 전경

커피하우스는 정보의 대중화와 금융 영역의 발달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런던에서는 자연과학, 천문학을 대중들에게 커피하우스에서 강의를 하였고, 많은 청강자들 중 상인들은 이러한 기술을 항해술을 개선하는데 사용하는 긍정적인 교차점도 불러일으켰습니다. 보험과 복권 등의 금융 상품 거래, 주식 거래 및 정보 공유 역시 커피하우스에서 발달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커피하우스 모임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세금을 부담하는 앙시엥 레짐에 저항하기 위한 아이디어들이 공유되는 프랑스 혁명의 발화점 역할을 하는 등 역사의 중요한 역할도 하였습니다.

당시 알코올 이외 별다른 대안이 없던 음료에서 각성을 도와주고 활발한 지식 공유를 도와준 커피야말로, 근대 유럽의 지식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평가해도 될 듯합니다.

차의 기원은 중국의 고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불을 지핀 도기 안에 우연히 찻잎이 들어갔는데, 이렇게 우려낸 물이 섬세하면서 상쾌한 음료가 만들어졌다는게 기원전 약 2700년 황제 신농(하나라 이전 삼황오제 중 한명)이 다스릴때의 최초의 차에 관한 신화적 기록입니다. 중국에서는 당, 송나라 시대를 시대를 거치며 점점 보편화되었으나, 원나라 시대에 접어들면서 잠시 인기는 수그라듭니다.

한편 일본에서는 10세기 경 에이사이라는 승려가 중국에서 가져온 차에 관한 전문지식을 통해 전파된 것을 시작으로, 14세기에는 대부분의 가정집에 차나무가 있을 정도로 보편화되었습니다. 이후 16세기 중국도 명나라에 접어들면서 다시금 차의 인기가 생겨납니다.

 

17세기 마카오로 향하는 포르투갈의 선박

16세기부터 중국은 유럽과의 교역을 하면서 차와 실크, 도자기 등을 유럽의 금, 은과 교역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포르투갈을 통해 유럽으로 건너온 차는 인지도가 없을 뿐만 아니라 너무나도 비쌌기 때문에 큰 인기가 없었지만, 18세기 영국에서의 광적인 인기와 더불어 수출량이 급격히 많아졌고, 결국 영국이 차를 아편으로 거래하면서 이를 금지한 중국과 아편 전쟁을 벌입니다. 그 결과 홍콩을 할양받고 아편을 통한 무역은 합법화되었죠. 현재 중국이 마약에 대해 엄하게 다스리는 배경은 여기서부터 비롯되었다고 보기도 합니다.

또한 차는 유럽 상류층의 많은 인기를 끌면서, 찻잔이나 주전자 등의 중국산 도자기도 명품으로 취급받기 시작했습니다. 기존에 여성의 출입을 금지했던 커피하우스와 다르게 티가든(Tea Garden)은 많은 젊은 여성이 찾는 명소로 변모했고, 귀족들이 서로 만나는 티 파티가 활황을 이루었습니다.

영국의 산업 혁명 이후엔 당시의 첨단 기기를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정신을 몽롱하게 만드는 기존의 알코올 음료류 대신 차 마시는 휴식 시간(Tea Break)을 만듭니다. 결과적으로 생산성의 증대와 함께, 차는 산업 혁명에서의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게다가 차에 있는 살균 성분으로 영아 사망률을 크게 줄였고, 이질과 같은 수인성 전염병의 발병률도 크게 낮춰 당시 유럽 사람들의 건강 상태도 크게 개선하는 역할을 합니다.

 

당시 동인도회사의 최대 시장가치를 현대 기업과 비교한 그림. 2012년 자료여서 차이가 다소 있음(특히 애플, 마이크로소프트)(그래도 멀었네...ㄷㄷ)

영국은 이와 더불어 18세기 동인도회사가 인도의 아삼 지방에서 차를 대량으로 재배하기 시작하고, 차 생산량을 극적으로 높입니다. 동인도회사는 한때 막대한 부를 거머쥐었으나, 이에 반대하는 세포이의 항쟁이 발발하면서 차의 생산권을 영국 정부가 관리하면서 동인도회사는 해산되었습니다. 물론 영국 정부도 인도를 식민지로 관리하며 막대한 이익을 챙기며, 대영제국의 전성기를 이뤄냈습니다.

영국은 차를 통해 큰 발전을 이뤄냈으며, 지금도 영국과 많은 과거 영국의 식민지 국가들이 차 문화를 즐기는 관습이 남아 있습니다. 이렇듯 차는 과거 대영제국 시절에서 역사, 경제적으로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코카콜라

18세기 소다 가게 모습과 소다 기계 광고

18세기 조지프 프리스틀리가 맥주 양조장에서 가스를 물에 용해시켜 만드는 탄산수를 발명한 것을 시작으로, 이를 그대로 밀봉해 상업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의 탄산수는 여러 질병에 치료제로 사용하는 의약품으로만 사용했으나,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여러 시럽이나 와인(유럽에도 보편화하기 시작했습니다)을 첨가해 음용하면서 보편화되었습니다.

이후 1886년 애틀랜타의 약제사 존 펨퍼턴이 남아메리카에서 주로 서식하는 코카나무의 성분을 활용해 탄산수에 코카즙과 와인을 섞어서 의약 제품으로 판매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금주령이 내려지면서 와인 대신 설탕을 첨가해 청량 음료로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제조와 마케팅 권한을 물러가는 펨퍼턴에게 받은 로빈슨은 금주법이 시행하기 시작한 애틀랜타에 필기체 스타일의 로고와 함께 '코카 콜라를 마시자'라는 등의 여러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고, 1년 간의 금주법이 끝난 뒤에는 음료 부분에서 점유율을 크게 높혔습니다. 그러나 회사가 성장하면서 코카콜라의 권리에 대해 많은 사람이 다퉜으며, 결과적으로 당시 로빈슨의 변호사의 형제인 아사 캔들러가 모든 권한을 위임받아 코카콜라를 운영하기 시작합니다. 그뒤 코카콜라는 미 전역으로 판매를 확장하였고, 19세기 말에는 코카콜라가 국민적인 음료가 되었다며 회사가 자랑할 정도로 급속히 성장합니다.

20세기에 들면서 코카콜라는 기존의 시럽을 판매했던 것을 병에 직접 완제품을 넣어 판매하는 것으로 바꿨고, 의약품 관련 내용을 빼면서 청량 음료로서의 이미지를 확고하게 다집니다. 덤으로 절묘한 타이밍으로, 의약품 내용을 뺀 시기에 정부가 특허 의약품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죠. 병에 담긴 코카콜라는 기존 소다 가게 뿐만 아니라 각종 야외 스포츠 행사, 식품점 등에서도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오만 천지 언어로 만든 코카콜라 로고

이후 1930년대 대공황 시대와 함께 알코올 음료의 판매를 허용하였고, 강력한 경쟁자인 펩시 콜라가 등장하면서 코카콜라의 성장은 잠시 주춤하는 듯 했으나, 우울한 시대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코카콜라를 소개하는 등 여러 마케팅을 통해 매출을 끌어올렸습니다. 

코카콜라가 세계인의 음료로 보편화하는 결정적인 계기는 2차 세계 대전입니다. 당시의 코카콜라는 군사 훈련과 먼 이국에 참여했던 군인들에게 보급되었고, 이는 군인들로 하여금 코카콜라를 통해 고향을 생각나게 하고 도덕성 유지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쟁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면서 1942년 미국은 여러 청량음료 회사의 설탕 공급을 배급제로 바꿔 생산량을 반으로 줄이게 만들었지만, 일찍부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던 코카콜라는 이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코카콜라의 생산량을 지속적으로 늘리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전쟁 시기 미국은 세계의 수많은 지역에 군 기지를 설치하였고, 이 과정에서 들어온 코카콜라가 지역 주민들의 손까지 가게 되어 인기를 끌었습니다. 결과적으로 2차 세계 대전이 코카콜라에겐 전 세계에 홍보되는 수단이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 인기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매출 역시 급상승합니다.

이 과정에서 코카콜라는 미국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자리잡았고, 냉전 시대와 이후 현대 사회의 중동의 여러 국가에서는 자본주의의 상징이라며 코카콜라의 자국 진출을 견제하거나 미국에 대한 항의 시위시 코카콜라를 즈려밟는 경우도 생깁니다.

이후 현대로 와서도 코카콜라는 마케팅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으며, 미국의 부상과 자본주의의 승리, 그리고 세계화를 대표하는 음료로 자리잡았습니다.

 

결론 - 결국은 물에서 시작했다

스위스 기업 네슬레의 다양한 물 브랜드

 

책의 마지막 에필로그는 현대 사회에서 병에 담긴 물의 판매량이 급격히 늘어났다는 얘기로 시작합니다. 광천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때문에 물 판매량이 늘어났다는 점과, 아직도 많은 개발도상국이 겪고 있는 깨끗한 물을 구할 수 없는 문제, 물 때문에 많은 지방이 분쟁을 겪고 있는 현실을 지적합니다. 이를 통해 인류의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건 물이었고, 우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맥주부터 시작하는 여러 음료를 거쳐 다시 물의 근원적인 문제로 회귀했다고 저술합니다. 

앞에서 소개한 여러 음료의 대부분의 배경이 깨끗한 물을 얻기 위해서란 점을 알았다면, 충분히 일리 있는 의견이라 생각합니다. (결국 역사는 돌고 도는군요)

 

소감

책에 담긴 수많은 내용을 이 블로그에 담기엔 너무 무리가 있었습니다. 음료 하나하나마다 길다란 역사를 모두 넣은 거대한 백과사전 같은 느낌이었고, 기존에 알지 못했던 음료 속에 숨겨진 역사를 깊이 알 수 있었습니다.

다만, 지나치게 깊은 역사 얘기들이 많아서 관심있는 음료가 아닐 경우에는 흥미가 다소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고,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습니다.

위의 사진처럼 저는 독서 모임에서 여기 나온 음료(21세기 음료라고 생각한 레드불 포함)을 가져가서 얘기를 하면서 나눠먹었어요.

뭐..물론 맛은 아는 맛입니다만 ㅎㅎ 먹으면서 할 얘기가 훨씬 많아져서 다채로운 시간으로 느꼈습니다.

블로그의 내용 이외에도 6가지 음료 중 자세한 역사를 알고 싶은 음료가 있다면, 이 책을 읽으며 음료를 마셔보는 것도 추천합니다.